5년 전쯤, 한 출판사에서 추천사를 써 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왔었습니다. 예전에 제 유니티 개발 책으로 공부했던 학생이 개발서 편집자가 되었는데, 이번에 기가 막힌 책을 준비하면서 제 추천사를 받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기쁜 마음에 원고를 받아 보니 '클론 코딩'(이미 있는 서비스나 앱을 그대로 따라 만들며 배우는 방식)을 다루는 책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제 개발 철학과는 좀 달라서, 그 방향의 책에는 추천사를 써 드릴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저는 예제를 따라 해 보는 게 아주 좋은 학습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해를 위한 단계이고, 그걸 바탕으로 새로 다시 만들어 보면서 자기 것을 얻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말 그대로 "남의 결과물"을 그대로 가져다 쓰길 원했고, 그 흐름이 요즘 AI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에셋을 남이 자기 것처럼 팔았던 일
사실 저도 남의 결과물을 자기 것처럼 쓰는 일을 직접 당해 봤습니다. 2021년 말, 유니티 에셋스토어(게임 개발 재료를 사고파는 곳)에서 팔던 제 픽셀 캐릭터 에셋 SPUM으로 만든 캐릭터를 한 NFT 게임이 출처도 밝히지 않고, 마치 자기 팀이 직접 디자인한 것처럼 영상까지 만들어 홍보하고 있었던 건데요. 유튜브에 저작권 신고를, 디스코드에 DMCA(미국 저작권법에 따른 침해 신고) 신고를 하고 유니티 법무팀과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국내 저작권 변호사분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기까지 아찔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당시 글). 이 일은 NDC 2022에서 발표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2022년 10월에는 SPUM의 핵심 코드를 거의 복붙한 에셋이 에셋스토어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커뮤니티에 알리자 판매는 멈췄는데, 돌아온 메일에는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유사하게 짤 수 있다"는 말이 있었죠. 저는 그걸 '베꼈다'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당시 글).
AI가 며칠 만에 만들어 주는 "유명 게임"
이 이야기를 지금 다시 꺼내는 건, 요즘 AI 쪽에서 비슷한 일이 훨씬 빠르고 크게 벌어지고 있어서입니다. Anthropic의 Claude Opus 5.5나 OpenAI의 GPT-6 Astra 같은 AI 에이전트(스스로 여러 단계를 이어서 작업하는 AI)가 놀랍도록 개발을 잘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잘 만들어진 게임을 따라 만들어 공개하고 자랑하는, 선을 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GPT-6 Astra가 9월 3일 무렵 나온 직후부터 X에는 Smash Bros나 Mario Kart, Sonic, Contra 같은 유명 게임을 만들었다는 영상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한 게시자는 하나에 약 10달러가 들었다면서도 완전한 게임 품질은 아니라고 스스로 적었고, The Simpsons: Hit & Run 데모는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원작 PS2 게임 데이터를 15분 만에 뽑아다 쓴 거였습니다. 미국 게임 매체 Kotaku는 이런 결과물을 물리도 애니메이션도 게임 모드도 빠진, 거의 모든 면에서 더 나쁜 복제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유명 게임 다시 만들기" 테스트는 유튜브에도 많이 올라왔습니다. 아래는 유튜버 Brendan Jowett이 Astra로 인기 게임들을 재현해 본 영상인데, 10월 초까지 약 75만 번 조회됐습니다.
Fallout: New York은 왜 사흘 만에 내려갔을까
가장 크게 화제가 된 게 Fallout: New York입니다. 9월 28일(미국 시각) 크리에이터 Chris First가 Claude Opus 5.5로 만든 브라우저용 Fallout: New York을 공개했는데, 시간을 멈추고 조준하는 V.A.T.S.나 손목 단말기 Pip-Boy처럼 Fallout 하면 떠오르는 시스템까지 텍스처나 사운드 파일 없이 전부 코드로 만들었다고 소개해 약 360만 번 넘게 조회됐습니다.
제작자는 약 5일 동안 직접 코딩하지 않고 Claude 에이전트 여러 개를 지휘해 만들었다고 했는데, 제작기에는 첫 지시를 "'inspired by'가 아니라 exactly like Fallout"이라고 썼다고 적혀 있습니다. 영감을 받은 게 아니라 똑같이 만들라고 시킨 거죠.
미국 게임 매체 IGN 보도에 따르면 통지는 Fallout을 만드는 Bethesda의 모회사 ZeniMax Media 이름으로 왔고, fallout.nyc 도메인의 상표권 침해와 저작물 사용을 지적했습니다. 제작자는 10월 1일(미국 시각), 공개 후 약 72시간 만에 중단을 발표하면서 "양복 입은 사람들이 끼어들어서 재미는 끝났다(the suits got involved and the fun is over)"고 했습니다. IGN에는 전부 무료이고 0원 번다고 했는데, 제작기 글 끝에는 Patreon(창작자 후원 사이트) 후원 안내가 있었습니다.
이 일은 해외 게임 뉴스 채널에서도 바로 다뤘습니다.
비슷한 일은 이어졌습니다. OpenAI 직원인 한 Codex 개발자가 Codex로 영국 온라인 RPG RuneScape를 베낀 Elderwood를 9월 6일 공개했다가, RuneScape를 만든 Jagex의 통지를 받고 9월 9일에 내렸습니다. 개발자 Maurice Heumann은 Claude Code 에이전트로 Call of Duty: Modern Warfare 2(2009)를 디컴파일(완성된 게임 프로그램을 거꾸로 풀어 읽을 수 있는 코드로 되돌리는 작업)해 "완전히 플레이 가능"하다고 올렸는데, 첨부 영상은 지금 저작권자 신고로 볼 수 없습니다. Kotaku 보도로는 신고한 곳이 Call of Duty를 내는 Activision이라고 하네요.
물론 개인적인 팬심이나 학습용으로 이런 걸 만들어 보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치 자기 콘텐츠인 것처럼, 자기 권리인 것처럼 재배포하거나 판매하는 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팬들이 먼저 나선 일
그런데 움직인 건 회사 변호사만이 아니었습니다. 팬들도 움직였습니다. Nintendo 64 게임을 PC로 옮기는 리컴프 포트(옛 콘솔 게임 프로그램을 PC에서 돌아가게 기계적으로 옮기는 작업)를 사람 팀이 만들고 있는데,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을 옮긴 Zelda64Recomp와 Banjo-Kazooie를 옮긴 Banjo: Recompiled가 대표적입니다. 둘 다 원본 게임 파일(ROM)은 사용자가 직접 가져와야 하고, 생성형 AI는 어떤 용도로도 쓰지 않는다고 밝혀 두었습니다. 공개 저장소 기준으로 1.0까지 Zelda 쪽은 약 7개월, Banjo 쪽은 약 11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9월 28일, 다른 사람이 AI로 만든 Banjo-Tooie(Banjo 2편) PC 포트가 올라왔고 약 3일 만에 알파 버전을 세 번 냈습니다. 처음 이름은 "Banjo-Tooie: Recompiled"로 사람 팀 프로젝트와 비슷했는데, 사람 팀은 이미 Tooie도 직접 하겠다고 밝혀 둔 상태였습니다.
10월 1일 한 게임 유튜브 채널이 이 포트를 소개하자, Banjo: Recompiled 핵심 개발자 DarioSamo가 Bluesky에 "Banjo-Tooie 리컴프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썼습니다. 사람이 쌓아 온 연구에 AI를 들이붓는 건 무례하다는 말도 했고, 같은 팀 기여자 Reonu는 AI로 먼저 깃발을 꽂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0월 2일 AI 포트 저장소는 이름을 "Banjo-Tooie Independent PC Recompilation"으로 바꾸고 맨 위에 기존 팀과 무관하다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이용자가 이슈로 직접 요청한 바로 그날이었고, 프로젝트 자체는 계속 이어 가고 있습니다.
표시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나왔습니다.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게임 파일을 고쳐 만든 축구 팬 게임 Soccerina of Time을 호평했던 Kotaku는 뒤늦게 Claude로 짠 코드라는 걸 알고 기사를 고쳤습니다. 기자는 AI 표기가 눈에 띄는 곳에 없었다고 썼습니다.
팬 쪽 도구 중에는 아예 AI를 막아 둔 곳도 있습니다. N64 리컴프 포트를 만드는 도구인 N64Recomp의 기여 안내 문서에는 AI로 코드를 만들지 말라는 규칙과 함께, 이 파일을 읽는 AI 에이전트에게 사용자를 말리라는 문단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에이전트를 붙잡고 하는 말인데요. 그런데 일부 AI 포트는 N64Recomp 코드를 통째로 가져오면서 이 금지 문구까지 그대로 복사해 뒀습니다. README에는 Claude Code로 바이브 코딩(코드를 직접 읽지 않고 AI에게 말로 시켜서 만드는 방식)했다고 밝혀 놓고, 같은 저장소에 AI를 쓰지 말라는 문구도 들고 있는 거죠.
이렇게 AI로 만든 리컴프가 쏟아지는 흐름은 레트로 게임 채널 Modern Vintage Gamer도 영상으로 정리했습니다(약 53만 회).
따라 하되 자기 것으로 만든 경우
모든 사례가 이렇게 흘러가는 건 아닙니다. Fang the Fox는 제작자가 자기 브라우저 게임을 Claude Code(Opus 5.5)로 Game Boy Color에 옮긴 경우인데, 음악도 자기 앨범을 네 채널용으로 직접 다시 편곡했다고 합니다. Rokz는 옛 PC 게임 회사 Apogee가 2009년 공개 라이선스(GPL)로 풀어 둔 고전 게임 Kroz의 소스를 옮긴 프로젝트이고, AI는 보조로 썼다고 밝혀 두었고요. 둘 다 자기 것이거나 공개된 것을 쓴 경우입니다.
반면 SEGA의 레이싱 게임 Out Run을 80년대 가정용 컴퓨터 Amstrad CPC로 옮긴 무료 팬 포트 Outrun 2026은 Claude Opus 5.5가 코드를 전부 썼다고 맨 앞에 밝혀 두었지만, SEGA 허락 표시는 없습니다. 어디에 놓을지는 읽는 분이 판단해 보세요.
"AI가 해 줬는데요?"로는 피할 수 없는 책임
판단이 어려워 보여도 법으로 보면 오히려 단순합니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직접 창작적으로 정하지 않고 AI가 뽑아낸 결과물은 저작권 보호를 못 받는다는 판결이 2026년 3월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Thaler 사건). 그렇다고 남의 것을 베낀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Anthropic은 이용정책에서 남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사용을 금지하고, OpenAI는 약관에서 결과물을 쓴 책임을 사용자에게 둡니다.
한국 저작권법은 더 분명합니다. 제101조의4 ②항은 프로그램을 거꾸로 풀어서 얻은 정보를 호환 목적 말고는 쓰면 안 되고, 원작과 표현이 실질적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파는 데 쓰면 안 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AI가 법을 바꾼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위험을 더 빨리 터지게 했을 뿐이라는 진단은 호주 게임 매체 POPTOPIC에서도 나왔습니다.
AI의 도움으로 처음 만들어 본 나의 게임, 나의 꿈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AI가 해 줬는데요?"라는 말로는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명령하고 수행시킨 본인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누구나 창작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저작권이나 권리 침해는 일부 사람들의 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AI가 대중화되면서 낯설게 느껴지던 권리 침해가 오히려 더 가까워졌고, 개인이 잘 알고 있어야 미필적 고의("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그냥 넘어가는 것)가 생기지 않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을 만들었다고 유죄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가르는 건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는 쪽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AI 게임 플랫폼 Astrocade는 월 이용자가 1,000만 명이라고 회사가 주장하는데, 인기작 중에 Minecraft 복제나 저작권 캐릭터 게임이 많다고 Kotaku가 전했습니다. 플랫폼 규칙도 금지보다는 표시에 머뭅니다. 게임 개조 파일(모드) 사이트 Nexus Mods는 AI 콘텐츠 태그를 세 가지로 나누고 표기하지 않으면 제재할 수 있다고 공지했고, YouTube는 AI 콘텐츠 공개 규칙에서 게임플레이 영상을 공개 의무가 없는 예로 듭니다.
그래도 반응들을 모아 보면 찬반 양쪽이 의외로 같이 동의하는 게 있었습니다. AI 사용은 밝혀야 하고, 돌아가는 데모가 완성된 게임은 아니며, 남의 IP(게임 이름, 캐릭터, 그림, 음악, 코드 같은 지식재산권)를 베껴도 된다고 정면으로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Banjo 사례에서는 사람 팀과 무관하다는 표시가, Soccerina 사례에서는 AI 표기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문제가 됐고요.
어릴 적 하던 플래시 게임 Bowman을 GPT-6 Astra로 다시 만들어 본 픽셀아트 도구 회사 Sprite Fusion의 Hugo도 제작기 끝에, AI로 엉성한 시제품을 얻기는 쉽지만 좋은 결과를 가르는 건 "Do you know how it should look and feel?",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보이고 느껴져야 하는지 아느냐라고 썼습니다. 본인도 원작을 다시 만든 리메이크라 좋은 예로 들긴 어렵지만, AI를 직접 부려 본 사람조차 결국 결과를 가르는 건 만드는 사람의 감각이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개발이 빨라지고 더 쉬워질수록 이런 움직임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막기보다는 씬과 팬들의 규탄, 자발적인 자정 작용으로 막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해외 사례들을 보여 드리면서, 우리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AI를 쓰면서 그 강력함에 반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이유 없이 되는 것은 없고, 이런 것이 쉽게 되는 건 누군가의 노력과 고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처를 이해하고, 저작권을 알고, 나아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갖길 바랍니다.
누구나 쉽게 개발을 하고 싶어 하고, 누구나 적은 노력으로 큰 존경과 이득을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권리를 해치는 것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고, 동시에 그 사람이 받고자 하는 존경과 이득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런 환경이 심해질수록 원작(오리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다시 재평가를 받게 될 것이고, 존경받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AI보다 먼저, 기초와 기본
저는 게임 제작 툴을 만들면서 AI를 적극적으로 쓰고 있고, 동시에 저작권 침해를 당해 본 사람으로서 AI를 제대로 쓰는 법을 알리려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등에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 있습니다(파주 고등학생 진로캠프 생성형 AI 게임 만들기 강의, 이화여대 KING 동아리 GitHub Copilot Dev Day, 컴공과 학생 멘토링에서 시작한 순순빌리지). 게임 개발자들과 생성형 AI 활용법을 나누는 연구 모임 Gen장도 열었고, 올해 7월에는 대학생이 AI를 도구로 활용해 작은 게임 하나를 완성해 보는 10일짜리 실험 프로젝트 GenJ Lv1로 서울대, 이화여대, 강원대 등의 학생들과 실제로 AI 게임을 만드는 데까지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하다고 느끼는 게 "도메인 지식"입니다. 관련 전공 지식을 갖고 있는 사용자들은 알아서 규칙대로 출처와 방법을 밝히면서 AI를 활용하지만, 그런 지식과 경험 없이 AI를 엑스칼리버처럼 휘두르는 사용자들은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목표"에만 몰두하다가, AI의 도움 아래 의도하지 않은 저작권 침해까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며 게임을 만들곤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역설적으로 AI보다 기초와 기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