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마무리하며..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2023년도의 마지막 날이다.

매년 한해를 마무리 할때쯤 이면.. 그 해 있었던 일들을 꼭 정리해서 블로그에 포스팅하자고 마음을 먹곤 하는데, 매번 정신 차려보면 막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금년에는 12월 초부터, 이번에야 말로 미리 글을 정리해서 올리자고 마음 먹었는데.. 포스팅을 작성하고 있는 오늘이 12월 29일이다. ( 글 수정하다보니.. 31일..)

어쨌든.. 금년도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더 멋진 2024년을 기대해보면서 간단하게 금년에 있었던 일들을 통해 깨달은 이야기들을 몇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순순 스튜디오의 중심은 바로 “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던 한 해.

내가 운영하고 있는 개인 사업체인 “순순스튜디오” 의 2023년의 시작은 매우 진취적이었다. 재밌는 기회와 인연으로 새로운 2개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과거의 인연을 총 동원해 오래간만에 팀을 꾸리고 불타 오르며 개발에 임했었다.

그런데 불과 2월달만에 2개의 프로젝트는 드랍이 되었고, 봄이 완연할때쯤 우리 팀은 해체 되어야만 했다.

결국 세상에 공개하지 못하고 폐기 (?) 되어버린 비운의 프로젝트 스펌 매치..

결과적으로 나의 사정 보다는, 외적인 요인 때문 이었는데..

그 중 하나는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파트너사의 담당자의 사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 영입했던 기획 파트를 맡았던 팀원의 사정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외적인 요인에 의해서 내가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무너져 버렸고, 나는 꽤나 공허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까지도 꽤나 여파가 있는 상황인데.. 한해를 마무리 해보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가장 큰 원인은 “나” 에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외부의 변수로 인해서 무너질 프로젝트는 진행해선 안됐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이제서야 좀 깨닫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인생에선 비슷한 일이 상당히 많았는데.. 나이가 40쯤 되니 그것이 왜 문제인지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오래전에 친분이 있던 한 교수님이 나와 소주 한잔을 하면서 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 당신이 같이 일하는 모두가 당신과 동등한 역할과 가치를 지니는 <파트너> 가 되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쉽게 생길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파트너> 는 평생 한명 만날까 말까이고, 대부분은 일을 진행할때 함께 하는 분들은 <파트너> 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일을 주거나 고용을 하는 <스테프> 로 봐야합니다.”

당시에는 무슨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금년에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니.. 정말 나에게 피가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 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미 10년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었는데.. 이제서야 깨닫는 것을 보면…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많이 들고 있다.

어쨌든, 이제서야 어느정도 문제를 인식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러한 결심이 2024년도에는 제대로 반영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좀 더 나 자신에 집중하고, 나의 시간과 계획이 헛되지 않도록 업무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가족에서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 아내의 퇴사와 나의 역할 변경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고, 삶이란 예측이 불가능 하다고 했던가.

위에서 언급 했던 허무함과 공허함이 가득했던 2월이 지날때쯤.. 우리 집에서는 큰 이벤트가 발생했다. 바로 아들이 유치원을 입학한 것.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아들의 유치원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학년을 마치고 곧 형님반으로 가는 아들

남들에겐 그냥 평범한 삶의 이벤트겠지만.. 코로나 시절에 태어나 주로 집에서만 생활해왔고, 아빠가 주로 집에서 일을 하고 엄마가 회사를 나가며, 이로 인해서 장모님의 도움으로 육아를 처리 해오던 우리 집안에서 자라온 아들에게는 기존의 어린이집 입학때부터 쉽지 않았었다.

그전까지는 육아에 있어서 나의 역할도 컸지만, 유치원 입학과 함께 시작되는 아이시점에서의 사회생활에서는 확실히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은 달라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을 하던 아내의 역할이 많아졌고, 여름이 지날때쯤 아내는 아들의 인생을 위해서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바로 지난 2010년도부터 쭉 이어오고 있던 본인의 커리어를 잠시 내려두기로 한 것.

아내가 휴직 이후 퇴사를 결심하고 전업주부로서의 생활을 선언을 하고, 가장 힘든 육아를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리고 외벌이를 담당해야 하는 나의 두 어깨는 엄청나게 무거워졌다.

동시에 지난 몇년간 애매하게 이어졌던 아내와 나의 역할의 혼선을 줄이고 각자의 역할에 집중할때가 도래한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선 앞서 이야기 했던 “나” 자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상당히 연관성이 있는 것 같은데..

과연 2024년의 나는 Role & Responsibility ( 역할과 책임) 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래간만에 시작한 강의 그리고 가능성 – 시간강사 라이프 시작(?)

아마도 가족 여름 휴가때 쯤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어느정도 휴직후 퇴사를 결정을 하고 있을때쯤, 오래간만에 대학교 강의 제안이 오게 되었다.

사실, 조건이 좀 까다로워서 과거 였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을 했을 것 같다.

일단 강의 장소가 원주에 위치하고 있어서 왕복 4~5시간을 다녀와야 했고, 강의도 하루에 3시간 전공 수업이 2개나 되어서 부담이 상당히 되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강의명이나 내용을 내가 정리해서 개설 한 것이 아니라, 원래 강의를 하시기로 한 교수님이 계신데, 그분의 사정으로 강의를 못하게 되면서 급하게 대체자를 찾다가 나에게 연락이 온 것이라서.. 강의 내용도 부랴부랴 공부를 해서 내용을 정리를 해야하는 상당히.. 어려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앞서서 말한 내용 들에 따라서 나는 나의 커리어를 위한, 동시에 가족을 위한 변화가 필요했고, 동시에 아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교육 과정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함도 생겨서 수락을 하게 되었다.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지난 한 학기동안 강의를 진행했던 강릉원주대학교 멀티미디어 공학과

학기가 종료된 이 시점에서 회고를 해보자면.. 역시 예상대로 쉽지 않았고, 강의 전날과 강의 다음날의 시간도 삭제가 되어서 결과적으로 매주 1일 강의를 나가지만 거의 3~4일의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강행군이었다.

물론, 이 내용은 내가 요령이 부족하고 한학기를 그것도 두개의 전공과목을 진행해보는 것이 처음이라.. 더 힘들었겠지만.. 나의 예상보다 훨씬 힘들고 고달팠다.

하지만 동시에 얻는 것도 많았는데, 가장 큰 것은 나의 “주제” 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과거부터 지식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마추어나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막연하게 언젠가는 은퇴를 하거나 기회가 오면 교단에 서서 지식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지 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막상 우연한 기회에 이를 체험해보니, 준비없이는 엉망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공부하고 준비해야 나중에 기회가 오더라도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

동시에 이미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많은 교수님, 강사님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들기도 하고 역시 각 영역의 전문가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금이라도 이를 깨달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정규과정” 에서 인정받는 공부와 학위를 준비해보고 싶었다.

물론 아쉽게도 십수년전부터 고민 해오던 내용의 연장선으로 “뭘” 하고 싶은지 결정하지 못해서… 금년에도 석사를 도전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2024년에는 꼭 시간을 쪼개서 라도 학위를 따거나 논문을 쓰는데 도전을 해보고 싶다.

2024년에도 강의를 계속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를 잘해서 나중에라도 학생들에게, 타인 들에게 내가 얻은 경험과 지식을 올바르게 전파하고 인정 받을 수 있기를 희망 해본다.

일과 취미를 구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의 가장 큰 특징 이라면, 정말 다양한 분야를 얇고 넓게 경험을 해봤다는 점 같다.

이는 어릴때부터 쭉 이어져온 나의 아이덴티티 같은 것인데.. 어쩌다보니 경험한바가 많아서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서 때로는 능력자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허접’ 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고민하고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영역에만 집중을 할 수 있도록 살아오고 있다.

그러던 나에게 금년에는 또 다른 큰 “유혹” 이 생겨났었는데..

바로 오래간만에 푹 빠져서 살고 있는 3D 프린터 이다.

2023년도 상반기에 지인을 통해서 뱀부랩이라는 회사의 X1C 프린터를 알게 되고, 크리얼리티사의 K1 프린터를 초창기부터 사용해보게 되면서 2023년도부터 시작되는 고속 프린팅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게 되면서 6월부터는 정말 오래간만에 불타올라서 정말 많은 시간을 쏟아서 프린터를 가지고 논 것 같다.

그래도 과거에 프린터에 많은 시간을 들였었고, 지금도 노력을 해서 그런가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에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고,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였고, 유튜브 채널도 프린팅 관련 전용 채널을 제작해서 3개월 가량 운영한 것 같은데,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벌써 수익 신청을 할 수 있을 만큼 키워낼 수 있었다.

요즘은 구독자가 500명만 넘어도 수익 신청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의 연장선으로, 이 활동을 직업, 업으로 삼을 수 있느냐는.. 진지하게 고민이 되는 부분인데.

정답 부터 말하면 지금 당장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해오는 다양한 활동들이 “창작” 이라는 영역에서는 일맥상통이 되기도 하지만, 위에서 말한 학교 강의를 해보면서 나의 경험을 일반화 시켜서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지식” 으로 전달한다고 이야기 하면..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프린팅 경험과 활동은 아직은 좀 더 공부를 하고 전문성을 키우고 또한 더 노력을 해야할 방향으로 본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해서 재미난 기회가 있다면 프로젝트도 하고, 수익활동도 하겠지만.. 아직은 좀 더 취미생활의 영역으로 보
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2024년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2024년은 나에게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아니, 변화가 없다면 안될 것 같다.. 글에 담을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사건들이 있었지만, 몇가지만 줄여서 적는 과정을 통해서도 다시한번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일례로 연초에 있었던 일 중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아내가 아이의 유치원 친구들의 어머니들과 커피한잔 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남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날 아내가 집에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 나.. 오빠가 무슨일을 하는지 설명을 못하겠어. ‘

두둥..

그렇다, 나는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재미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반대로 그걸 정리하기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거 하고 살아요~~ 라고 이야기 했어.’

나의 삶을 이해해주고 이렇게 이야기 해주는 아내에게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금년의 마지막날, 내년의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있는 이때에는.. 내년에는 내가 어떤일을 하는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을 위해서도, 내 가족을 위해서도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서도

2024년은 나를 위한 한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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